만보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 찰스 대너

 

뉴스를 찍어내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신문의 의무다.

- 시카고 타임즈

 

 

  이것은 만보. 쉴 새 없이 치달리는 속보의 세계에서 후발선제의 묘리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한 느릿한 송출이다. 나로 말하자면 <뉴스페이퍼>의 비공식 리포터이자, 합의되지 않은 54번째 참여자 되시겠다. 뉴스페이퍼 ISSUE NO.3는 각 필자들에게 ‘신세계’라는 단어만을 던져주고 자유롭게 글짓기를 의뢰했는데, 이런 기획에 날 빼놓다니. 큰 실수를 하셨다.

 

  신세계를 사유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그 무엇보다도 구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우선일 것이다. 지금의 세계가 만족스럽다면 새로운 세계를 꿈꿀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이 나라의 모범시민인 내게 꽂히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개꿀잼몰카인가 싶은 인구 밸런스다. 뭐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한국인의 수적 번영을 바라진 않는다. 가끔은 내일 50세 이상의 인류가 한꺼번에 즉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은근히 꿈꿔보기도 하고, 만약 인간이 한 달에 한번 정도밖에 타인을 마주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최근 급감한 출생률을 보며 종말론적 무드와 쾌감을 맛보는 건 나만의 감상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위로는 너무 많고, 아래로는 너무 적은 이 깔때기 중간에 놓여있는 우리 세대의 처지다. <칠드런 오브 맨>이 연상되는 유례없는 신생아 멸종기에, 감수분열하듯 증식하는 노인들의 수는 앞으로도 성실히 세금을 납부할 내게 있어 전쟁만큼 삶의 위협이다. 우리가 낸 연금을 추후에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건 내 친구 준우(특징: 조금 멍청하지만 착함)가 최근 가장 핏대를 높이는 부분이다. 이런 말은 좀 나쁘지만 준우는 이론이나 사회과학 등을 모르는, 그저 잘 살고 싶은 평범한 회사원이기 때문에 나는 이 친구를 통해 ‘요즘 젊은 남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 엿보곤 한다. 그런 점에서 준우는 멍청한 게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나 디씨나 펨코 같은 특정 남초 커뮤니티가 경로화하는 사고를 체화한 상태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준우는 기성세대에 불만이 많다. 근미래엔 연금고갈과 부머 세대의 의료보험에 대한 부담 증가로 사회보장이 소멸할 거라고 만날 때마다 말해준다. 엊그제도 연금개혁이 없다면 2050년 취업자는 월급의 60%를 연금으로 낼 것이며,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최근 연금수령액 5.1% 인상을 발표했다는 말을 안주와 함께 뱉어냈다.(신빙성 있는 통계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도 사회보장의 소멸은 눈앞에 어른대고 있고, 미래는 긴 저성장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일찍 죽지 않은 나머지 30대가 되어버려 독립을 숙제처럼 앞둔 내게 집값은 마냥 황당하기만 하다. 화성을 테라포밍하겠다는 기업가의 야망과 20평 남짓의 주거마련이 서민의 꿈으로 공존하는 시대를 산다는 기분. 내 나이보다 오래된 콘크리트를 수십억에 팔겠다고 아우성인 사람들. 어찌어찌 구매한다 쳐도 인구급감으로 찾아올 실질가격의 하한가. 그 사이에 끼인 나. 이런 세계가 누군가에겐 투명하고 편승할 수 있는 현실처럼 보인다는 게 늘 새롭고 짜릿하다. 무엇보다... 존나 좁고 낡고 못생기지 않았나? 저것들을 어떻게 저 가격을 주고... 살 수가 있어?...

 

  저출산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준우는 늘 이런 주장을 피력한다.

“기성세대가 부동산을 매개로 젊은이들을 착취하고 있고, 때문에 이후 세대의 결혼-둥지마련-출산에 이르는 리듬 자체가 붕괴된 거야. 이거 까딱하면 설거지당하는 거야.”(만약 그렇다면 이건 종적 윤리에 대한 배반이다.) 나는 우정을 중히 여기는 타입인지라, 보다 선명한 프레임은 세대적인 게 아니라 지대이윤을 매개로 일어나는 착취와 피착취의 드라마라고 내뱉진 않는다. 이런 식의 교정이 거듭되면, 최악의 경우에 나는, 준우라는 중요한 레퍼런스를 잃을 수도 있다...

 

  차라리 저런 사고를 어떤 힘으로 유도할지가 예술을 전공한 나의 숙명적인 역할처럼 여겨진다.(비교적 최근 일어난 변화임) 그래서 준우의 사고를 따라 어떤 정치적 제안들을 던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곤 했다. 친구가 실질적 삶의 위협이라 생각하는 어두운 전망을 털어놓았는데도 대안을 고민하지 않는 건 배임이나 마찬가지기에 남몰래 생각해 온, 미래를 바꿀 구상을 여러분께 공유해 드린다.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1. 줄어드는 출산율 탓에 망하는 지방 대학을 정부가 사들인다.

2. 사들인 지방 대학을 공영 실버타운으로 개조한다.

3. 노인들을 공영 실버타운으로 이주시켜 여생을 살게 한다.

4. (특히중요) 노인의 주택 소유를 금지시킨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노인복지에 드는 비용, 독거노인 고독사, 저출산, 주거비용 안정, 인구분산 등 많은 사회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공영 실버타운은 프로그램 운용에 따라 극상의 노후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점이 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선... 헌법을 위반해야 한다... 헌법 14조는 다음을 명문화한다.

 

  “모든 국민은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그렇다고 술게임 같은 것도 아닌데 술래 세대에게 모든 벌칙을 몰빵 하자니 그것도 찝찝한 일이다.(왠지 90년대 생이 당첨일 것 같다...ㄷㄷㄷ...)  그러니 우리는 14조를 제압할 수단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법에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시도... 헌법 77조다.

 

  “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그렇다. 계엄이다. 지금의 사태를 비상으로 인정하고 계엄을 통해 초법적 조치를 취한다면 거주의 자유를 제한하는 동시에 사적 소유에까지 제동을 걸 수 있다. 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 거라는 것을. 아무리 계엄이 헌법에 명시된 조항이래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국회를 무력화해 국회의원 소집을 방해하면 군사통치는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계엄이 발동된 국가는 (슈미트가 말한)신의 강림이 일어났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그렇지만 대체 왜 민주주의 국가들에(미국에도 있음. 신종플루 창궐 땐 계엄을 고려했다고도 전해진다-나무위키) 이런 조치가 기재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라,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민주주의 최고의 성취는 완성도 높은 계엄의 적용에 달린 게 아닐까?라고...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 크나큰 트라우마를 남긴 계엄도, 스스로를 치유할 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닭 잡는 데 사람 잡는 칼을 쓰려고 하냐고 기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준우에게도, 내게도 당면한 인구문제는 닭 잡는 일보다 좀 더 빡세다.

 

 

☆특별부록☆

이 부록은 뉴스페이퍼 ISSUE NO.3 본지에 실린 필자들의 글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입니다.
부록을 즐기고 싶다면, 본지를 구매하세요.^_^

★★★★★
박시내 - 스포츠의 핀홀을 통해 만화경처럼 산란하는 세계
이연숙 - 소년이란 핑계로 거세된 것들에 대한, 질투가 일 정도로 섬세한 기술

★★★★☆
곽소진 - 터질 것 같은
돈선필 - 작가가 이렇게 잘 쓰는 건 반칙 아닌가?
이민주 - 이미 사랑해서 못 낳아... 난 이맘 알아...
임정수 - 여러분은 지금 영리한 작가의 솔루션을 보고 계십니다(* 부분을 빼먹지 마세요)
NW - 팬데믹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한 씁쓸한 우화

★★★★
김맑음 - 얄미운 글재주
다크-다크투어리스트 - 닉언일치
한선우 - 갑옷, 전투복, 보철의 현명한 앙상블

★★★☆
김얼터 - 세 개를 주자니 모범적이고, 네 개를 주자니 지나치게 모범적인
이정우 - 해골과 VR의 환상일식
익명의 여행자 - 편지가 열린 감옥을 탈출할 이들에게 닿길 기대하며
추성아 - 상품화된 장례 문화에 대한 적법한 문제제기

★★★
권시우 -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문현정 - 차곡차곡 잘 갠 이불을 보는 느낌
박유진 - .
용선미 - 특파원의 교본
이충현 - 겨자씨 통해 수미산 보기
정유진 -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진화 - 때론 그라데이션이 클리셰가 될까 두려워
함연선 - 박시내가 저렇게 쩔지만 않았어도...

★★
권아람 - 30년만 빨리 얘기했어도
김미정 - 2050년에서 보냅니다. 착불입니다.
김성우 - 창작과 독서의 시차 논하기는 쓴이들의 클리셰
김슬기 - 영화+작업=새해다짐(?)
김호원 - 톱-다운 뷰에 관한 시시한 반복
노해나 - 메모라는 이름의 적절한 핑계
류다연 - 거대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건 꽤나 벅찬 일
류혜민 - 이거 혹시 인수인계장인가요...
박정우 - 역시 아직까진 내용의 부재를 견디기 힘들어...
변현주 - 자잘한 현상에 함몰된 관점의 표류기
서예원 - 탄소는 양의 문제가 아니거늘
임소담 - 뉴스페이퍼가 진짜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죠...?
진세영 - 사라짐에 관한 낯익은 소회
하상현 - 기시감으로 가득한


김선옥 - 뾰족하지 않은 단상들
김준혁 - 계속 이런 식이면 취직은 어려울지도...
류성실 - 진실아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한다~!
이양희 - 일기는 SNS에!!!
최윤희 - 몽구야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한다~!
최희승 - 일기는 SNS에!!!

Unknown
김진주 - 어찌 덕질에 별점을 매기랴
무니페리/박유진 - 해독불가의 대화...
신호철 - 기행문
윤정미 - 뗀 별은 하늘에 띄울게요
임경용 - 북리뷰
한솔 - 언터쳐블 가정사, 언터쳐블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