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 2024

 

  한반도를 지칭하는 몇 가지 낱말들이 있다. 남한으로 부른다면 북한과의 관계성을 암시하기 위함이고, 대한민국이라 부를 땐 자긍심이 고취되었거나, 고취해야 할 목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한국이라고 불렀을 땐 다소 중성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코리아는? 코리아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근본처럼 따라붙는다. 외국인과의 첫 대면에서 국적을 묻는 일은 불가피하게 요청된다. 이때 나는 별다른 대책 없이 한국과 연루된다. 개인? 하하. 코리아는 한국인의 종특을 거리를 벌린 채 냉소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용례를 따라가자.

 

  그동안 한국인만의 특징을 밝혀내기 위한 시도는 다방면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불충분하지만, 특징들의 삼삼오오를 교양 있는 인간이라면 어렵지 않게 댈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짐짓 자조하거나 시시덕거릴 수도 있다.(예시 생략) 내가 생각했을 때 이 나라에서 가장 재밌는 현상은 관음이 아닐까 한다. 그래! 이 나라는 관음에 죽고 관음에 산다. 여기엔 대중부터 엘리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웬 아이 워즈 영, 매주 금요일 밤 으슥한 시각에 <사랑과 전쟁>이라는 방송이 꽤나 오랫동안 상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부부 간의 사적 분쟁을 공적 담론으로 전환하고 결혼 제도에 내재된 불화들을 중재하는 일종의 ‘클리닉’을 자처했는데, 그려~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뭐가 문제가 되겠냐만,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해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이벤트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시작했다.

 

  ‘관찰’예능이란 명목으로 온갖 종류의 삶을 염탐하는 것이 브라운관의 궁극일까? 부부가 주는 충격은 금세 시시해졌는지, 브라운관은 다른 관찰 대상을 찾아헤맸다. 이혼한 부부를 찾아 출연시키고 관찰하기(우리 이혼했어요), 헤어졌던 연인들을 함께 출연시켜 반응을 관찰하기(환승연애), 돌싱이 된 인간들이 다시 짝 맺는 과정을 관찰하기(돌싱글즈), 셀럽 부부가 사는 사적인 삶을 관찰하기(효리네 민박), 연예인들의 육아기를 관찰하기(슈퍼맨이 돌아왔다), 노총각이 되어버린 내 아들 관찰하기(미운우리새끼), 핫바디를 가진 남녀들의 썸을 관찰하기(솔로지옥), 노총각 일반인들의 구애기 관찰하기(나는솔로), 알파메일 남녀들의 연애를 관찰하기(하트시그널), 청소년들의 풋풋한 썸 관찰하기(소년 소녀 연애하다), 혼자 사는 연예인 관찰하기(나 혼자 산다), 가상 연애에서부터 가상 이혼에 이르기까지 여느 다큐멘터리 영화제 부럽지 않은 삶의 기록지가 이 나라의 낯 뜨거운 퍼블릭 컬처다. 그걸 관찰하는 패널들의 반응까지 대상으로 놓고 관찰하는 관찰의 미-장-아-빔.

 

  나는 이렇게 남을 구경하는 데 미쳐버린 한국이 솔직히 싫진 않다. 이를 두고 별별 사람들이 각자 맞는 스푼을 집는다. 패널들의 정서적 반응이 우리 사회의 일관된 정서를 만들어내서 감정에서마저 옳고 그름을 생산하고... 스와이프,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긍정하고... 스와이프, 관계가 소멸된 이 나라의 역설적 탐닉을... 스와이프. 미디어 컨텐츠가 문제라고 떠드는 타입의 글은 그동안 지나치게 생산되었다. 문제 많지. 이 나라가 얼마나 관음에 미쳐있는지 막막 누가 대마를 했다고 하면 그냥 돌아버리는 거야. 대마를 언제 했을까? 얼마나 했을까? 누구랑 했을까? 기분 좋았을까? 가정은 생각 안했을까? 그럼 이제 법치국가 같은 건 더 이상은 없는 거야. 이제 그냥 막 터트려. 검증 같은 건 필요 없어. 관찰이 먼저니까. 녹취록 갖다가 그냥 막 틀어.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 꼭 들어야겠어. 후회는 하는지 안 하는지가 너무 궁금해. 이거 말고 또 다른 약도 했을까?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그냥 뭐 대서특필이야. 소외가정이고 뭐고 시시해진 지 오래잖아. 검사는 머리털로 했을까? 몇 가닥? 음성이라고? 계속 해! 겨털에선 혹시 모르잖아, 아니다 그냥 다리털까지 뽑아. 뽑았다고 마구잡이로 기사 써 내. 어차피 니들 다 볼 거잖아.

 

  잘할 때는 뭐 하나 관심 없어. 그게 정상인 평균상회의 세상이니까. 잘 굴러가는 건 너무너무 시시해. 아니? 잘할수록 짜증나서 이제 건수 하나 잡을 거 없나 눈이 가로로 쫙 찢어져. 그러다가 한 건 잡어? 파티가 열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용한 인간들 마침내 문이 열렸다는 듯 우르르 튀어나와서 한 마디씩 해야 돼. 사실관계 필요 없어. 포스트모더니즘 왈 사실 같은 거 없다며. 숫자로 찍어 눌러. 찍소리 못할 때까지. 마음대로 왜곡해 어차피 우리가 더 많어 ㅋㅋㅋ 가볍게 해. 저쪽이 먼저 무도덕했으니까 토큰을 쥐었잖아. 이거 합법이야. 사과문 받아낼 때까지. 무릎 꿇느라 점마 슬관절 작살날 때까지. 누가 저 인간들 편들 생각도 못하게, 입 뻥긋 못하게 그냥 모가지 딱 잡고 위아래로 털 다 뽑아. 이거 알고 보면 자정작용이야. 그니까 빨리 퍼다 날라. 뭐 잘못됐다고? 쟤가 먼저 잘못한 거 아니야? 적당히 틀린 거 알아도 대충 덮어주고 넘어가면서 같이 씹고 뜯을 사람 널렸어. 뒤는 안 중요해. 뒤탈이 없으니까. 사람 죽어? 이 나라 인구 오천만이야!

 

  그 덕일까? 한국 예술가들 작업 퀄리티 전반적으로 너무 좋아~ 코리아에서 태어나길 너무 잘했다니까.

 

 

☆특별부록☆

이 부록은 뉴스페이퍼 ISSUE NO.4 본지에 실린 필자들의 글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입니다.
부록을 즐기고 싶다면, 본지를 구매하세요.^_^


★★★★★
서동진 – 미술계 합법마약(안진국 버프 받고 ☆개 더)
김현진 – 흠을 잡으려면 꽤나 공을 들여야 할 견고함

★★★★
정강산 – 좌파적 회상술의 마지막 수련자
황재민 – 드리블은 좋았는데 슛은 좀 약한
노두용 – 그 쌉싸름한 시간이여
정지현 – 혼탁한 유산에 대한 상속일지라도 고민할 줄 아는 의젓함
황원해 – 작가님의 훌륭하신 어머니가 눈물나게 부럽고 질투나
최희승 – 느낌아니까~
문선아 – 백의민족 망령에 여전히 시달리는 우리 민족을 구해줘...

★★★☆
지호인 – 밥맛 떨어지는 말투가 매력~ 언제까지고 통하진 않겠지만
김방주 – 어이, 당신. 작가적인 포커싱이 아주 맛있군

★★★
정은영 – 조재연, 엄제현 선생님. 이제 미술계 분위기 좀 알겠습니까?!
박웅규 – 많이 본 것 같은데도
백필균 – 킁
홍기하 – 뉴욕으로 간 건 좀 별론데??? 진짜 갔어요?
김혜원 – 이건 세상살이에 대한 작은 우화야...

★★☆
이미지 – 왜인지 산뜻한 플로우

★★
오은 – 우린 통계 너머의 무엇이 필요해
최수련 – 여기서까지 이러시니까 좀 자기PR같아요
안진국 – 서동진이랑 같은 스케일을 작심해놓고 이 무슨 플레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선생님 글의 문맥에 라투르 인용은 너무 배치되는 행동 아닙니까
임석호 – 프로 독자로 임명합니다
이희준 – 잘 풀리고 있어서 쓸 수 있는 글이었을지도
변현주 – 차마 2년 연속 악평은 못하겠다
고원석 – 다음엔 사유합시다
리아 리잘디 – 한국이 경쟁 빡센건 우리도 잘 알아요 독한 놈만 살아남음... 인종차별은 진심 반성좀 하자 코리아
이준영 – 별점 싫어하시는 분에게 별점을 매기자니 마음이 콩딱 ㅠ


이상엽 – 작업이랑 전시 서문 같아서 재미 없어요
황효덕 – 하아 길다...
오제성 – 그림체만큼 낡은 비판(003은 좋았음)
윤미류 – 저 이런 포슬한 이야기 진짜 좋아해요>_< 금천의 따듯했던 기억, 인천아트플랫폼이 문 닫는 시기와 맞물리다!
이진영 – 디지털 코리아가 아니라 그냥 디지털이잖아...
티모 앤더슨 – 다음엔 홈플러스 말고 바르다김선생 김밥도 드셔보세요
레이첼 레이크스 – 레이첼 솔직하게 말할게요 이번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별로였음!!
비카 키르첸바우어 – 아이고 당신까지만 하자 주문한대로 성실하게 썼네 다 범생이들이었나봐
뉴스페이퍼 편집부 – 아 진짜 접근성 모릅니까 한국어 번역 좀 해요 기금도 잘 타면서
이민선 – 와아~ 일식 편을 기대할게요!

Unknown
김옥선 – 난 글만 패
장파 – 역시 큰일은 여자가bb
류한솔 – 뉴스페이퍼 자유도 만세
이소정 – 작년 언노운은 범주 바깥으로 쿨하게 이탈해버렸다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이현수 – 난 글만 패2
이설희 – ;;;;;;;;;;;;;
이소정 – 난 글만 패3
이나하 –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고 이외수 인용)

총평
작년께 더 재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