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서 살아남기

  일하는 중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옆 가게 베어링집 사장님이 노가리를 숯불에 구웠다고 와서 먹으라는 문자였다. 행사 때 나눠 먹으려고 넉넉하게 주문한 노가리를 사장님께 드린 것인데, 본인 공장에 불이 잘 피워지는 미니 그릴을 장만하신 걸 자랑하실 겸 문자를 보내신 모양이다. 사장님께 이따가 놀러 가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나는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를 내며 지출결의서 작업을 했다.

 

  로컬이 지겨웠다. 너무 지겨워서 이 글쓰기를 선택했다. 로컬을 대하는 나의 괘씸해진 마음이 정리가 될까 싶어서 말이다. 나에게 ‘로컬’은 회사에서 끊임없이 사용하는 그저 업무 용어일 뿐이었고, 내 삶의 현장이 아닌, 그냥 일터에 불과했다. 왜들 그리 로컬에 집착하는지, 그저 막연하게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기에 활용하기 쉬운 개념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아프리카 땅을 상대로 탐욕적으로 땅따먹기를 했던 지배국가들의 욕망이 지금의 국경과 문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그저 인간의 욕망이 뿌리내리기 참 적절한 물리적 토양의 모습이었다. 가령 내가 머물렀던 을지로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을지로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시행이 떨어졌고, 이를 알리는 공론장 형태의 자리에 임대인과 임차인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로컬 사업 관계자들 등 을지로에 터를 잡은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앉았다. 내가 일하는 회사도 서울시 기금으로 로컬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라 이 자리에 함께했다. 그리고 서울시 관계자들이 재개발 계획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 시민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마이크를 돌리기 시작할 때부터였을 것이다. 참석자들의 욕망 파티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임대인과 임차인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고, 로컬 사업을 운영하는 민간 기업들은 을지로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을 계산하는 듯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을지로에 살지 않는 임대인들이 을지로에 사는 임차인을 쫓아내는 신랄한 멘트들과 서울시 기금으로 을지로에서 활동하는 로컬 회사들의 이해타산적인 모습들은 어찌 보면 상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였다.

 

  로컬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남기 위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장소에 터를 잡는다. 로컬이 가지는 고유한 색채는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하지만 이 로컬에는 인조잔디를 깔러 온 이방인인 듯, 사업의 외투를 걸쳐 입은 비슷한 얼굴의 로컬이 서성인다. 내가 매달 월급 받고 하는 일이 바로 그 로컬 사업이다. 로컬 사업의 기조는 지역의 고유한 특수성과 현재 놓인 문제점을 찾아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현재보다 나은 방향의 개선점을 찾는 것이며, 지역민들에게는 문화 시민으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형태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주민 친화적이고 지역에 대한 환대를 내세우는 로컬 사업은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동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가령 지명 이름을 따서 네이밍을 한 사업의 참여 대상이 지역 주민인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로컬 사업이라고 봐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말로 가득한 로컬 사랑 표어를 실천하는 관이 로컬을 대하는 태도는 사실 그리 친화적이지 않다.

 

  내가 머물던 을지로는 로우테크 기술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이곳의 기술자분들은 적어도 30년 이상을 한곳에 머물며 생업을 이어가신 분들이 대다수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술자분들과 그들의 오랜 세월 때가 묻은 작고 낡은 공장, 글자 색이 바랜 간판들이 좁은 골목을 메운 것이 지금의 을지로 모습이다. 이 모습에 매력을 느낀 예술가들과 젊은이들의 영역도 을지로 안에 점점 넓어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제조산업의 역사가 깊은 을지로의 모습에 힌트를 얻어, ‘세운메이드’이라는 지원사업을 꽤 오래 이어오기도 했다. 나도 이와 같은 사업을 진행하는 운영 주체의 말단 직원으로 을지로를 누비고 다닌 것이 어느덧 4년이 흘렀다. 4년 동안 관의 이름을 등에 없고, 을지로와 함께 부대끼면서 만난 로컬 사업의 모순은 철저히 중앙집권적 구조를 띄고 있었다.

 

  관이 로컬 사업을 설계 및 수행할 때, 그 모든 과정에서 행정절차라는 것을 밟는다. 내가 목격한 로컬 사업의 모순 중 하나는 이 행정이라는 것이다. 관이 설정한 행정 절차는 익숙해지면 상당히 편한 관리 시스템이다. 어떠한 일을 공동으로 수행함에 있어서는 합당하고 명확한 기준과 지표가 필요하다. 이를 근거로 목표 혹은 성과를 수치화할 수 있는 등의 정량적 분석과 연구적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행정이기도 하다. 이 말은 즉, 모든 로컬을 모의고사 성적처럼 동일선상에 올려두고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로컬 사업에 뛰어든 민간은 여기서 암묵적인 등급이 매겨진다. 어느 정도 관의 행정과 입맛을 알아듣는 민간은 로컬 사업 헌터로 불리며 지속적인 혜택과 지원을 누릴 수 있다. 이에 반해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민간은 도태되는 형태가 되고 만다. 심지어 관 또한 본인들이 설정한 행정을 잘 수행할 줄 아는 민간 업체를 화이트리스트로 인지하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훨씬 수월하게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행정 방식을 모든 로컬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자유로운 개인의 장소들로 뭉쳐진 원형 로컬 위에 관 행정의 로컬사업은 인위적인 포장지 같았다.

 

  관 행정의 탑-다운(Top-Down) 체계는 견고하다. 처음에는 로컬에 맞는 행정을 달리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로컬에 머무는 사람들은 사실 생각보다 로컬 사업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랬을 때, 관은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편리한 관리 시스템인 행정을 로컬마다 달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달리한들 누가 동의를 할 수 있을까? 만일 로컬마다 그에 맞는 행정을 도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변화하는 도시 운명에 맞춰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행정은 개인의 공간, 아주 작은 단위 구성원의 집단이 머무는 로컬에 필수적이지 않지만, 로컬 사업을 설계한 이들에게는 수행과 평가의 측면에서 불가피한 모순을 일으킨다. 관은 그저 예쁜 포장지를 꺼내 로컬을 포장할 뿐이다. 진정성보다는 그저 관이라는 존재가 당연히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이며, 하나의 과업에 불과해 보였다. 지역민들도 모르게, 지역이 어떤 형태로 평가되고 있는 로컬사업은 내 눈에 위선자들이 만든 무대 같아 보였다.

 

  로컬 사업의 모순은 행정적인 부분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모순은 로컬 사업의 종료다. 사업이 종료된 그 이후 남겨진 로컬의 모습은 다소 외로웠다. 큰 자본으로 관이 로컬에게 씌워준 포장지는 유통기한이 짧다. 유지와 운영이 자생적,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어떤 이유로 터를 잡았건 해당 지역의 로컬 사업은 그곳에 장소하는 개인 모두에게 열려있는 지원이자 혜택이다. 익숙하든 서툴든 다양한 지역 주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사업에 접촉한다. 어찌 보면 로컬 사업은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사업의 운영 주체는 로컬에 있는 지역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기도 하고, 성공적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로컬 사업의 생명력이 짧은 이유는 지속적이고 자생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앞서 말했지만 로컬 구성원들은 개인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장소에 터를 잡은 것이지, 목표지향적인 로컬의 대의를 위해 그곳에 정착한 것이 아니다. 성공적으로 끝이 난 로컬사업의 결말이 더 잔인한 이유가 이것이다. 사업 종료 그 이후의 잔여물은 로컬 사업을 담당하는 주체가 아닌, 결국 그곳에 남아 자리한 로컬이 감당하게 된다. 그 로컬 사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야기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을지로에서 격하게 느낀 점이 이 부분이다. 을지로의 풍성한 자원으로 로컬 사업이 꽤나 흥행하던 중 재개발 시행에도 불이 붙었다. 박원순 시장의 자살과 오세훈 시장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을지로에는 더욱 아이러니하고, 괴상한 광경들이 보여졌다. 로컬 사업의 주체들은 사라지고 있는 을지로의 현재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며 온 힘으로 할 수 있는 문화예술을 총동원해 사업을 화려하게 진행했다. 그 와중에 재개발 공사로 인한 크레인 소리는 로컬 사업의 배경음악이었다. 정부의 색깔이 바뀔 때마다 로컬 사업의 생명은 위태롭다. 정확히는 사업 자체 보다 관의 기금을 받아 로컬 사업을 수행하는 하위 단위 조직들이 위태롭다. 로컬 사업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민간 조직은 정부의 입김으로 머물던 곳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로컬을 떠나면 로컬에 쌓아 올린 결과물들이 한순간에 주인 잃은 유기물이 되고 만다. 로컬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결과물은 사업 종료와 동시에 운영할 자본도, 유지할 주체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남아, 벽화가 낙서가 되는 광경을 나 또한 익숙하게 겪어봤다.

 

  성과 좋은 성공적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그 사업이 종료된 이후 지역 안에서 자생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나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놓인 로컬의 개선점을 찾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관이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주는 것뿐일까. 로컬 사업 주체들이 지역민들과 라포를 형성해 놓고 사업이 종료되면 매정히 떠나는 방식이 과연 로컬에 대한 진정성을 담아 계획한 사업이 맞을까. 나 또한 그 과업을 수행하는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생의 현장에 MSG를 뿌리고 도망가는 모습이 참 스스로도 위선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로컬 사업의 시발점도 한 인간의 욕망의 불과해 보였다. 행정의 결재라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각 단계별 피라미드 위치에서 로컬사업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아무개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욕망을 시작점으로 타고 내려와 지역민들의 욕망까지 자극하게 만드는 모습이 비로소 나에겐 로컬을 욕망의 밭으로 보게 만든 이유였다. 나 또한 그 아무개가 되어 현실을 살아간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폭력적이고 빠른 속도로 을지로가 재개발되는 탓에 내가 일하던 회사도, 조직도, 서울시 담당 부서까지 공중분해가 되었다. 회사가 쫓겨나니, 나도 쫓겨나고, 진행하던 사업들은 그 자리에 그냥 남겨두고 이사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을지로는 ‘힙지로’라는 네이밍을 얻고 시세가 오르는 와중에 나는 내가 해온 일들이 재개발에 일조하는 일은 아니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나는 얼마 뒤, 다시 안정적으로 매달 월급을 주는 큰 자본이 떨어진 다른 지역의 로컬 사업 기관에 이직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루는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 짐들을 정리하러 가는 길이었다. 청계광장을 지날 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전에 노가리를 나눠 드린 사장님이 재개발 반대 시위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계셨다. “지난번에 서울시가 진행한 OOO사업으로 만난 예술가들과 작품을 만드는 경험이 즐거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멋진 일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내 공장을 내쫓지 말아 주세요. 재개발을 멈추세요”라는 말씀을 하시며, 을지로 재개발 반대를 외치셨다. 하지만 며칠 뒤 사장님의 공장은 결국 이사를 가셨다. 나는 그 이후 다시 사장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사장님의 솔직하고 투박했던 그 말투가 4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아직도 나는 로컬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못한 채 또 로컬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